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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Story

엄마! 아빠 흉 좀 그만봐

by 대박꽃 2022. 12. 22.

[오마이뉴스 김하영 기자]
또, 시작입니다. 아, 저는 진정으로 엄마의 푸념소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요?
이날도 엄마, 아빠는 외할아버지가 농사 짓는 복분자를 따러 외가에 다녀오셨습니다.
외할아버지 혼자 시골에 계시기 때문에 일손이 많이 딸려서 부모님이 자주 도와 드리는 편입니다.
엄마는 농사일을 많이 해봐서 그런지 손끝이 참 야무져요.
무슨 일을 하든지 남의 손이 다시 안 가도록 마무리도 잘하세요.
그리고 어찌나 일을 빨리 하는지 전생에 분명히 소였을 거라고 확신할 정도입니다.  

엄마의 눈에 영~차지 않는 아빠의 일솜씨 그런 엄마 눈에 아빠는 항상 일도 못하고 게으른 일꾼인가 봅니다.
복분자를 따고 와서도 엄마는 아빠가 얼마나 일을 못했는지 저에게 푸념을 하기에 바쁩니다.
"복분자 따라고 했더니 따는 족족 먹기만 하더라. 안쪽에 있는 것까지
따야 하는데 앞쪽에 있는 것만 따서 엄마가 처음부터 다시 땄다.
일은 조금 하고 계속 집에 가자고 하더라. 또 그것 조금 따고 와서 손목 아프다고 파스 붙이더라.
" 매번 소재는 바뀌지만 레퍼토리는 같습니다. 마치 녹음 된 테이프를 틀어 놓은 거 같아요.
복분자가 상추로 바뀌면,
너희 아빠는 상추 따라고 하면 뿌리 채 뽑아오더라. 또, 고추로 바뀌면,
너희 아빠는 고추 따라고 했더니 줄기를 죄다 밟아 놓더라. 뭐, 이런 식입니다.
아니, 아빠가 농사일에 서툰 것이 제 탓이냐구요!
엄마는 꼭 제 방에 와서 아빠의 흉을 봅니다.
저는 엄마 딸이기도 하지만 아빠 딸이기도 한데, 엄마가 매번 아빠 흉을 보는 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죠.
그리고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라는데 엄마는 이런 일만 있으면 옛날에 아빠가 제대로 못한 일까지 죄다 복습하십니다.
아니, 방금 들은 얘기도 잘 까먹는 엄마의 기억력으로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아요.
엄마의 뇌 한구석에는 자동 백업되는 '남편의 지난 잘못'이라는 이름의 폴더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무튼, 위 내용이 테이프 앞면이라면 뒷면으로 넘어가서는 우리들이 꼭 아빠를 닮았다며
그 아빠의 그 딸이네, 아들이네 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러면 저는 테이프가 뒷면으로 넘어가기 전에 먼저 이렇게 선수를 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세 번만 만나보고 결혼한 엄마, 아빠
"그러게 누가 세 번만 만나보고 결혼하래?
복분자 잘 따는지 물어보고 결혼하지!
엄마, 아빠 얼굴만 보고 결혼했지?"
그때서야 엄마는 좀 잠잠해지면서 멋쩍은 듯 이렇게 대꾸합니다. "그때는 보이는 게 얼굴뿐이지 뭐….
" 엄마와 아빠가 세 번만 만나고 결혼 했다는 이야기는 제가 자주 써먹는 카드입니다.
중매는 엄마의 이모가 하셨다는데, 그때 아빠는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을 하셨대요.
근데 무척이나 성실하셨다고 합니다.
규모가 그리 큰 것은 아니지만, 공장도 앞으로 아빠 앞으로 될 거라는 소문도 있었다고 하네요.
아빠는 선을 보기 위해 목포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외가로 왔다고 합니다.
엄마의 할머니도 살아 계실 때라서 아빠가 직접 가셨나 봐요. 옛날에는 다들 그랬듯
결혼 당사자들보다 어른들이 마음에 들면 성사됐지요.
특히 엄마의 외할머니가 손주 사위인 아빠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셨다고 하네요.
아, 물론 당사자들도 싫지는 않았던 모양이에요.
예전에 막내 외삼촌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엄마가 선보는 날 부엌에서 기다리면서
막내 외삼촌한테 아빠가 잘생겼는지 보고 오라고 시켰다고 하네요.
엄마는 아빠의 얼굴이 마음에 들었나 봐요. 엄마의 표현대로라면 깔끔하게 생긴 얼굴이었다고 하네요.
거기다가 주위에서 다들 좋다고 하니까 세 번만 만났어도 결혼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보니 아빠 앞으로 물려준다던 공장 얘기는 별로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였다고 하네요.
형제 열 명 중 다섯째인 아빠한테 준다는 이야기 자체가 사실 불가능한 거였지요.
결국은 이런저런 포장지를 풀고 보니,
아빠의 단점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고 엄마의 푸념도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아빠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랍니다.
맞선 날 처음 본 엄마는 단발에 생머리였는데 참하고 귀엽게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혼식 다음날 아침에 보니 엄마가 파마머리를 하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그새 미용실에 갔다 왔냐고 물어보니 아니랍니다.
알고 봤더니 엄마는 그냥 둬도 파마머리로 보일 정도로 심한 곱슬머리인데 그동안은 미용실에 가서
드라이기로 머리를 쫙쫙 펴서 아빠를 만났던 거라네요.
아빠는 엄마의 화장발에 속은 게 아니라 '드라이발'에 속은 거지요. 그
래도 아빠는 평생 파마 값은 안 들겠구나 하면서 위안했다고 하네요.  

그래도 알고 보면 장점 많은 고마운 남편 엄마가 워낙 아빠가 일을 제대로 못한다고 잔소리 하지만
사실 아빠만큼 장점이 많은 사람도 없다는 걸 엄마도 잘 알고 있답니다.
엄마의 입도 막을 겸해서 아빠의 장점을 엄마와 함께 나열해 보았습니다.
일단 아빠는 반찬 투정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얘기 들어 보면,
친구 아빠들은 국이 없으면 밥을 못 먹는다는 둥 입맛이 까다롭다는 둥 반찬 투정이 심하더군요.
아빠는 형제가 열 명(실제로는 열 두 분이었으나 두 분은 어릴 때 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이라서
어릴 적부터 먹을 것 가지고 투정해 볼 기회가 없었거든요.
요리를 싫어하는 엄마에게는 딱 맞는 남편입니다.
그리고 체질적으로 술을 못 마시기 때문에 술값으로 돈 나가는 일도 없구요.
담배도 피우지 않아요.
무엇보다도 엄마가 가장 고마워하는 것은 매 주말에 엄마와 외가에 가는 거예요.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홀로 계신 외할아버지의 반찬도 챙겨드리고 집안 청소도 해드려야 하거든요.
한국 남자들은 보통 처가 일에 소홀한 편인데 아빠는 불평도 없이 매주 차를 운전해서 같이 가신답니다.
물론 아빠가 청소나 빨래를 해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엄마한테는 제일 고맙다고 합니다.
저희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결혼 전 연애할 때는
상대방의 좋은 점만 보다가도 막상 결혼해서 살다보면
눈에 씌웠던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나쁜 점만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단점만 보면서 짜증내면 결국 스트레스를 받아 괴로운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랍니다.
그것보다는 상대방의 장점을 깨닫고 그 장점 때문에 받게 되는 도움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 보세요.
확실히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실 거라고 확신합니다.